[천마로를 거닌 사람] 현장을 중시하는 PD, 허문호 | 2019.09.03 | HIT :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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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대신문 1653-천마로를 거닌 사람]
현장을 중시하는 PD, 허문호 (김달호 기자, 원대호, 이연주 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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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문호 동문(정치외교87)은 우리 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대구MBC PD로 일하고 있다. 오늘도 프로그램을 위해 현장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창 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나.
-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학문을 심도 있게 공부해 교수가 되고 싶은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대학 시절 조교로 활동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원으로 진학해 영국으로 유학까지 갔었어요. 하지만 뛰어난 선배님이 많아 교수가 되기 위해선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꿈을 포기했어요.
 
교수라는 꿈을 포기하고 PD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평소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 민주화 운동과 같이 당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어요. 그때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적 이익에 기여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PD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어요.
 
대학 시절 기억에 남는 일화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 처음 입학했을 당시가 1987년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아는 ‘6월 민주항쟁이 있었던 해였어요. 그때는 1학년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선배들 따라 집회에 참여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당시에는 우리 대학교 정문에 파출소와 소방서가 함께 있어 시위만 있으면 경찰버스가 학교 앞에 줄지어 서 있었어요. 그래서 시위가 시작되면 정문 밖에서 시위하던 사람과 경찰이 뒤엉켜 진압하고 체포되던 일이 계속해 벌어졌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해서 처음으로 최루탄 가스를 맛보기도 했죠.
 
대구MBC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군대를 제대하고 PD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대구MBC가 직원 공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 이곳에 들어가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입사를 결심했어요.
 
PD라는 직업의 특성상 주로 서울에 소재한 대학 출신의 사람들이 많다. PD로 일하며 지방대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는가.
- 많은 학생이 지방대 출신으로 방송국에 들어오기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아요. 대구MBC의 경우에도 서울에 소재한 대학을 졸업한 직원과 지방에 소재한 대학을 졸업한 직원의 수가 거의 같아요. 그래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면 돼요.
 
현재 대구MBC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 현재 PD 업무와 함께 방송제작부장으로도 일하고 있어요. ‘방송제작부는 텔레비전 정규 프로그램, 라디오 정규프로그램 등을 관리하는 곳이에요. 그 외에 방송제작부가 속한 편성제작국 내에는 특집 프로그램 등을 관장하는 편성제작부와 영상 취재, 카메라 편성 등을 관리하는 영상제작부가 있어요.
 
그렇다면 현재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 지금은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도 제작할 예정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 ‘위안부, 노래에 새긴 ()의 기억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위안소에서 생활하던 시절 부른 노래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작품이에요. 그때 꽃다운 나이에 끌려갔던 이들의 한이 서린 노래를 통해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조명한 작품이라고 이해하면 돼요. 또한 앞으로 다가올 세대에게는 그들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루고 있어요.
 
지난 2004년에 뉴욕페스티벌에서 라디오 다큐멘터리 부분 동상을 받은 작품도 위안부, 노래에 새긴 ()의 기억이라고 알고 있다.
- 맞아요. 당시 작품과 이름이 같기 때문에 후속작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PD로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 지난 2013년에 만든 ‘TV 메디컬 약손 - 0313 끝나지 않은 이야기예요.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03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그들의 고통을 공감해 보고자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여전히 상처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뜻깊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해요.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만 여전히 그 상처로 인해 선뜻 사회로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사회의 노력을 설명하고 있어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요.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
- 없어요. PD는 자신이 최고가 돼야 프로그램의 지휘를 잘할 수 있기에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자신을 어떤 PD라고 말하나.
- 주변에서는 저를 능력 있는 PD라고 말해요. ‘TV 메디컬 약손 - 0313 끝나지 않은 이야기’, ‘위안부, 노래에 새긴 ()의 기억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작품을 통해 받은 TV 다큐멘터리 부문 은상, 라디오 다큐멘터리 부문 동상 등의 수상 경험이 이런 평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PD로 일하면서 갖고 있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항상 낮은 시각에서 약자를 먼저 보려고 해요. 사회적, 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프로그램에 넣어 사회에 전달하고자 해요.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의 삶이 이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PD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곳이 지역 방송국이라는 점에서 힘은 작지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 제 목표는 계속 PD로 일하는 거예요. 그러나 지금과 같이 책상에 앉아 있는 PD가 아닌 항상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 머물며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싶어요.
 
PD를 꿈꾸고 있는 우리 대학교 학생 또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 청년들이 꿈을 꾼다는 점은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꿈에는 노력이 뒤따른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PD가 되고 싶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라요.
 
그러한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교내 활동으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활동을 추천해요. 대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생각의 폭을 넓혀 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서 사람을 자주 만나는 동아리 활동이나 영대신문과 같은 학보사 활동도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