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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복학, 내친김에 박사까지...” N

No.1962542
  • 작성자 통합관리자
  • 등록일 : 2010.02.16 00:00
  • 조회수 : 18175

국어국문학과 66학번 김숙이 씨

2002년 학부 복학, 8년 만에 박사학위까지 취득

[2010-2-15]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공부라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없었죠. 그래서 내친 김에 박사학위까지 마쳤고, 대학 강단에도 설 수 있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만학의 꿈을 지닌 분들이 있다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도전하는 용기를 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22일 영남대 학위수여식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김숙이(金淑伊, 62, 사진)씨. 44년 전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그가 이제 문학박사가 됐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66학번으로, 당시 학보사 기자로도 활동했던 그는 68년 같은 학보사 기자였던 현재의 남편(강정행, 69, 건축사)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2002년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복학, 34년 동안 접어두었던 꿈의 날개를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간 `한맥문학'을 통해 시인으로도 등단했다. "자녀 셋을 모두 출가시키고 나니 밀려드는 공허함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사랑문인협회 고문으로 활발한 시작(詩作)활동을 펼쳤으며, 2004년에는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연주회'에서 `초혼'이라는 추모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해는 뭍에서도 꿈을 꾼다>라는 자작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4년 3월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외손자와 함께 새내기가 됐다. 학부를 마치자마자 대학원 석사과정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것. 신세대 할머니를 자처하는 그의 석사전공분야는 10대나 20대 초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사이버문학. 자신의 홈페이지 관리는 물론 2개의 인터넷카페까지 운영할 만큼 인터넷실력도 상당한 그는 ‘한국 사이버리즘 문학연구-발생과 현황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2006년 2월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구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친 김에 2006년 3월에는 박사과정에까지 진학했다. 그리고 오는 2월 22일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정확히 만 4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게 됐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백석(白石) 시에 나타난 노장사상(老莊思想) 수용 연구’(지도교수 이동순). 평북 정주 출신의 재북(在北) 시인으로 최근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백석(1912~1995)의 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노장사상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백석의 모교인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山院大學)으로부터 학부생 시절의 백석에 대한 자료를 국내 최초로 발굴․입수한 성과도 거두었다.

 

 2년 전부터는 ‘글쓰기’라는 학부생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배우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가르치기 위해 그는 아이돌 음악도 듣고, 인터넷으로 아이돌그룹의 댄스도 따라 배우고, 각종 시청각자료를 활용해 PT자료까지 직접 만드는 열정을 쏟았다. 그 결과 강의평가에서 최고 94.6점까지 기록하면서 올 3월부터는 국어국문학과 전공과목인 ‘현대문학비판’도 가르치게 됐다.

 

 “8년 전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롭게 열리는 세상이 정말 흥미로웠죠. 그래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는 집중력도 떨어지고 체력도 딸려 많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6년 전 저와 함께 신입생이었던 외손자가 졸업생이 되는 마당에 저도 뭔가를 이루어야겠다는 다짐 때문에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그는 “공부에 끝이 있나요. 지금도 올 4월 발표할 예정으로 백석 시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는데, 앞으로도 관심이 가는 분야를 연구하고, 논문도 발표하고, 동료들과 토론도 하면서 지적으로 깨어있는 삶이길 바랄 뿐이지요”라며 수줍게 웃었다.